UR SEUL
혼자이면서, 유일한 존재.
경계선 성격장애는 감정과 관계가 매우 강렬하게 흔들리는 특징을 보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누구보다 필요로 하면서도, 버림받을 것 같은 순간에는 상대를 밀어내거나
극심한 분노와 불안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가상의 사례를 통해 경계선 성격장애의 어린 시절부터 성인기의 관계와 감정 변화까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 본 사례는 경계선 성격장애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구성한 가상의 사례이며, 실제 인물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사례 1 : 서지은(가명), 24세 여성
서지은은 24세의 대학생으로, 최근 연인과 심하게 다툰 뒤 손목을 여러 차례 그어
응급실에 방문하면서 정신건강의학과에 입원하게 되었다.
지은에게 이번 입원은 세 번째였다.
이전에도 연인과의 이별이나 가까운 친구와의 갈등 이후 죽고 싶다는 말을 하거나
수면제를 한꺼번에 복용하여 응급실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입원 당시 지은은 자신의 행동이 자살 시도는 아니었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죽으려고 한 게 아니에요. 그냥 너무 답답해서 그랬어요.
피를 보면 머릿속이 조용해지거든요.”
그러나 몇 분 뒤 담당 의사가 연인과의 관계에 대해 묻자 지은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전날까지 매일 연락하던 남자친구가 “우리 관계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이 계기였다.
지은은 남자친구가 자신을 떠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날 밤 지은은 남자친구에게 수십 통의 전화와 메시지를 보냈다.
“제발 전화 좀 받아.”“내가 뭘 잘못했는지 말해줘.”
“나 버리는 거야?”“너 없으면 나 진짜 죽을 것 같아.”
하지만 남자친구가 계속 전화를 받지 않자 지은의 감정은 급격하게 변했다.
“너 같은 사람을 왜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사람 가지고 노는 게 재밌어?”
“다시는 연락하지 마.”
그녀는 남자친구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낸 직후 휴대전화를 벽에 던져 깨뜨렸다.
약 한 시간 뒤에는 다시 남자친구에게 이메일을 보내 자신이 잘못했다며 만나달라고
애원했다.
지은은 상담자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말했다.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처음에는 너무 보고 싶고 붙잡고 싶은데,
어느 순간 너무 미워져요. 그런데 정말 없어질 것 같으면 또 무서워요.”
어린 시절
지은은 부모와 두 살 어린 남동생과 함께 자랐다.
아버지는 회사원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으며 가족들과 감정적인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일이 힘든 날에는 술을 마신 뒤 큰소리를 내거나 물건을 던지는 경우가 있었다.
어머니는 평소에는 지은에게 매우 다정했다.
지은의 옷을 골라주거나 학교 준비물을 챙겨주었고, “엄마는 우리 지은이밖에 없어.”
라고 말하며 지은을 끌어안기도 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기분에 따라 태도는 크게 달라졌다.
지은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친구와 싸운 뒤 울면서 집에 돌아온 적이 있었다.
“엄마, 애들이 나랑 안 논대.”
어머니는 처음에는 지은을 안아주면서 말했다.
“걔들이 이상한 거야. 우리 지은이는 아무 잘못 없어.”
하지만 지은이 계속 울자 어머니는 갑자기 짜증을 냈다.
“그만 좀 울어. 엄마도 힘들어 죽겠는데 너까지 왜 그래?”
지은은 어머니가 언제 자신을 위로해줄지, 언제 화를 낼지 쉽게 예상할 수 없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크게 다투는 날이면 어머니는 어린 지은의 방으로 들어왔다.
“엄마한테는 너밖에 없다.”, “아빠 같은 사람이랑 왜 결혼했는지 모르겠어.”
때로는 “엄마 그냥 사라지고 싶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은은 어머니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밤늦게까지 잠들지 않고 어머니의 방문 앞에서 인기척을 확인하곤 했다.
다음 날이 되면 어머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했다.
지은이 전날의 이야기를 꺼내면 어머니는 말했다.
“엄마가 언제 그런 말을 했어? 너는 쓸데없는 걸 너무 마음에 담아둬.”
학령기
지은은 초등학교 시절에는 비교적 조용한 아이였다.
교사들은 그녀를 “눈치를 많이 보는 아이”라고 평가했다.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도 상대방의 표정이 조금만 굳어지면 자신 때문에 화가 난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친한 친구가 다른 친구와 놀면 지은은 심한 불안을 느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가장 친했던 친구가 점심시간에 다른 친구와 함께 앉은 일이 있었다.
지은은 그날 친구에게 말했다.
“이제 나 필요 없는 거지?”
친구는 단순히 우연히 같이 앉은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지은은 친구가 자신을 버렸다고
느꼈다.
그날 저녁 지은은 친구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난 네가 제일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너는 아니었나 봐.”
다음 날 친구가 미안하다고 하자 지은은 다시 그 친구에게 강하게 의존했고,
둘은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보냈다.
청소년기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지은의 감정 변화는 더욱 심해졌다.
친구와 갈등이 생기면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고 화장실에서 울거나 갑자기 학교에서 조퇴
하기도 했다.
중학교 3학년 무렵부터 자신의 팔을 손톱으로 긁거나 컴퍼스로 찌르는 행동이 시작되었다.
지은은 당시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너무 화가 나거나 슬프면 몸 안에 뭔가 꽉 차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팔을 긁으면 이상하게 조금 진정됐어요.”
부모가 상처를 발견했을 때 어머니는 크게 화를 냈다.
“너 왜 이런 짓을 해? 엄마 창피하게.”
며칠 후에는 지은을 끌어안고 울면서 말했다.
“엄마가 잘못했어. 다시는 그러지 마. 엄마는 너 없으면 못 살아.”
지은은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느끼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감정을 어머니에게 보여주는 것이 위험하다고 느꼈다.
대학 생활과 연애
대학에 입학한 이후 지은은 여러 차례 연애를 했다.
연애 초기에는 상대방을 매우 이상적으로 평가했다.
현재 남자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 지은은 친구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지금까지 만난 사람이랑 완전히 달라. 처음으로 나를 진짜 이해해주는 사람
같아.”
두 사람은 연애 초기 하루에도 여러 시간씩 연락했다.
지은은 남자친구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부모와의 갈등을 자세히 털어놓았다.
남자친구가 “네가 많이 힘들었겠다.”라고 말하자 지은은 자신을 이렇게 이해해준 사람은
처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몇 달 뒤 남자친구가 취업 준비를 시작하면서 연락이 줄어들었다.
예전에는 10분 이내에 답장이 오던 메시지가 몇 시간 뒤에 오는 일이 생겼다.
지은은 남자친구가 자신에게 마음이 식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분명히 예전이랑 달라졌어요. 사람이 바쁘다고 이렇게 달라질 수는 없잖아요.”
남자친구가 공부 중이라고 설명해도 지은의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지은은 반복적으로 확인했다.
“나 아직 좋아해?”
“헤어지고 싶은 거 아니야?”
“다른 여자 생긴 거 아니지?”
처음에는 남자친구도 지은을 안심시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같은 질문이 반복되면서 남자친구가 피곤한 반응을 보이자 지은은 그것을 자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증거로 받아들였다.
감정의 급격한 변화
어느 날 남자친구가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며 저녁 통화를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지은은 처음에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불안해졌다.
‘원래는 나랑 통화하는 게 좋다고 했는데.’
‘친구들이 나보다 중요한 건가?’
‘혹시 다른 여자가 있는 건 아닐까?’
30분 정도 지나면서 생각은 더욱 극단적으로 변했다.
‘결국 나를 떠날 거야.’
‘사람들은 항상 처음에만 잘해준다.’
지은은 남자친구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다.
남자친구가 받지 않자 그녀는 화가 나서 말했다.
“너 진짜 이기적이다.”
“그렇게 살지 마.”
그러고는 남자친구의 번호를 차단했다.
하지만 약 두 시간 뒤 지은은 극심한 공허감과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정말 끝난 건가?’
‘다시는 연락이 안 오면 어떡하지?’
지은은 다시 차단을 해제하고 사과 메시지를 보냈다.
이와 같은 상황은 두 사람의 관계에서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자기 이미지
지은이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 역시 크게 변했다.
성적이 좋거나 주변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 때면, “사실 저는 다른 사람보다 감각도 있고
능력도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작은 실수를 하거나 누군가 자신에게 실망했다는 느낌을 받으면
“저는 그냥 인간 자체가 잘못된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저를 좋아할 이유가 없어요.” 라고
말했다.
상담자가 “스스로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했을 때 지은은 한참 생각한 뒤 답했다.
“잘 모르겠어요. 만나는 사람에 따라 제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공허감과 해리 경험
지은은 혼자 있는 시간을 특히 견디기 어려워했다.
약속이 없는 주말에는 친구들에게 계속 연락하여 만날 사람을 찾았다.
아무도 시간이 되지 않으면 침대에 누워 몇 시간씩 SNS를 확인했다.
“아무것도 안 하면 제가 텅 빈 것처럼 느껴져요.”
때때로 스트레스가 극심할 때는 주변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 경험도 했다.
“거울을 보면 제가 아닌 사람을 보는 것 같아요.”
“손을 보고 있는데 제 손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이런 경험이 시작되면 지은은 자신의 팔을 세게 꼬집거나 날카로운 물건으로 피부를 긁었다.
“아프면 다시 정신이 돌아오는 느낌이 들어요.”
입원 생활입원 초기
지은은 자신의 담당 간호사인 김 간호사를 매우 좋아했다.
김 간호사가 지은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들어준 날 지은은 말했다.
“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 선생님만 저를 진짜 이해하는 것 같아요.”
그녀는 다른 의료진이 무성의하고 차갑다며 자주 불평했다.
그러나 며칠 뒤 김 간호사가 병동 규칙 때문에 지은의 휴대전화 사용시간 연장 요청을 거절했다.
지은은 곧바로 태도가 변했다.
“선생님도 똑같네요.”“저 이해한다고 한 것도 다 거짓말이었죠?”
그날 지은은 병실 문을 세게 닫고 한동안 김 간호사와 이야기하기를 거부했다.
다음 날 아침에는 다시 김 간호사를 찾아와 울면서 말했다.
“어제는 미안했어요. 저 미워하지 마세요.”
치료진의 평가
치료진은 지은의 행동을 단순히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으로 보지 않았다.
그녀가 경험하는 버림받음에 대한 두려움과 감정적 고통은 실제로 매우 강렬한 것으로 보였다.특히 가까운 사람의 태도가 조금만 변해도 지은은 그것을 관계 전체가 무너지는 신호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결과, 사소한 관계 변화→ 버림받을 것이라는 두려움→ 강한 불안과 분노→ 상대방에게
매달림→ 상대가 거리를 둠→ 상대를 비난하거나 밀어냄→ 관계 악화→ 극심한 공허감과
자기혐오→ 자해 또는 충동적 행동이라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었다.
지은은 자신도 이러한 패턴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치료 중 그녀는 말했다.
“제가 제일 무서워하는 게 사람들이 떠나는 건데, 이상하게 제가 하는 행동 때문에 사람들이 더 멀어지는 것 같아요.”
🕊️ 경계선 성격장애에서 나타나는 강한 감정과 관계의 어려움은 단순히 ‘예민한 성격’이나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 이면에는 버림받을 것에 대한 깊은 두려움과 감정을 조절하기 어려운 고통이 자리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행동만 바라보기보다, 그 행동 뒤에 어떤 감정과 두려움이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