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R SEUL
혼자이면서, 유일한 존재.
경계선 성격장애는 감정과 관계가 매우 강렬하게 흔들리는 특징을 보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누구보다 필요로 하면서도, 버림받을 것 같은 순간에는 상대를 밀어내거나극심한 분노와 불안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가상의 사례를 통해 경계선 성격장애의 어린 시절부터 성인기의 관계와 감정 변화까지 함께살펴보겠습니다.
※ 본 사례는 경계선 성격장애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구성한 가상의 사례이며, 실제 인물과는 관련이없습니다.

사례 2 : 김하린(가명), 26세 여성
김하린은 26세의 직장인으로, 최근 가까운 친구와의 갈등 이후 극심한 불안과 우울을 호소하며
상담을 시작했다.
하린은 친구가 자신의 메시지를 몇 시간 동안 읽지 않은 일을 계기로 “이제 나를 싫어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빠졌고, 밤새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다.
다음 날 친구가 “회사 때문에 바빴다”고 설명했지만 하린은 쉽게 믿지 못했다.
“바빴으면 한마디라도 할 수 있잖아요. 진짜 중요한 사람이면 그렇게 안 하죠.”
그녀는 친구에게 화를 내며 관계를 끝내겠다고 말했지만, 몇 시간 뒤에는 다시 연락해 사과하며 자신을 버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하린은 상담자에게 말했다.
“사람이 멀어지는 느낌이 들면 머리로는 별일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아는데, 몸은 이미 끝난 것처럼 반응해요.”
어린 시절
하린의 아버지는 매우 엄격한 사람이었다. 성적이나 생활습관에 대한 기준이 높았고, 작은 실수에도 크게 화를 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하린이 받아쓰기에서 두 문제를 틀린 날, 아버지는 시험지를 보고 말했다.
“이 정도도 못 하면 나중에 뭐가 되려고 그래?”
하린이 울기 시작하자 아버지는 더 화를 냈다.
“울면 뭐가 해결돼? 정신 차려.”
어머니는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거의 개입하지 않았다.
하린이 나중에 어머니에게 “아빠가 너무 무서워.”라고 말하면 어머니는 “아빠도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그냥 네가 잘하면 되잖아.” 라고 대답했다.
하린은 점차 자신의 감정보다 부모의 기분을 먼저 살피는 아이가 되었다.
반복되는 이별 위협
하린의 부모는 부부싸움이 잦았다.
아버지가 화를 내면 집을 나가며 “나 이제 이 집에 안 들어와.” 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머니 역시 하린에게 “너희 아빠랑 더는 못 살겠다.” 라고 자주 말했다.
어린 하린은 부모가 정말 헤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날에는 거실에서 현관문 소리를 기다리며 잠들곤 했다.
아버지가 다음 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집에 돌아오면 하린은 안도했지만, 동시에 언제 다시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을 느꼈다.
조건부로 느껴지는 사랑
하린은 부모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자신이 잘했을 때만 유지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시험을 잘 보면 아버지는 “역시 내 딸이다.” 라고 칭찬했다.
반대로 성적이 떨어지면 “요즘 왜 이렇게 정신을 못 차려?” 라는 말을 들었다.
하린은 점차 ‘잘하면 사랑받고, 실망시키면 버려질 수 있다.’ 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중학생이 된 이후에는 작은 실수에도 자신을 심하게 비난했다.
친구와 다투기라도 하면 “내 성격이 이상해서 그래.”, “사람들은 결국 나를 싫어하게 돼.” 라고
생각했다.
청소년기의 관계
중학교 2학년 때 하린에게 매우 가까운 친구가 생겼다.
두 사람은 매일 함께 등교하고 쉬는 시간마다 붙어 다녔다.
하린은 친구에게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러나 어느 날 그 친구가 다른 반 친구와 친해지면서 하린의 불안이 시작되었다.
친구가 다른 아이와 점심을 먹은 날 하린은 하루 종일 말을 하지 않았다.
친구가 이유를 묻자 하린은 말했다.
“나 필요 없으면 그냥 말해.”
친구가 아니라고 해명하면 금방 다시 가까워졌지만, 비슷한 상황이 생길 때마다 같은 갈등이 반복되었다.
하린은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누가 저보다 다른 사람을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면 저는 갑자기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느낌이었어요.”
성인기의 연애
하린의 연애 관계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연애 초기에는 상대방을 매우 이상적으로 바라봤다.
“이 사람은 나를 절대 버리지 않을 것 같았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 상대방의 연락이 조금 줄거나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하린은 극심한 불안을 느꼈다.
한 번은 남자친구가 친구들과 여행을 가면서 하루 동안 연락이 뜸해졌다.
하린은 남자친구에게 연속해서 메시지를 보냈다.
“왜 답이 없어?”
“이제 내가 귀찮은 거지?”
“다른 여자 있는 거 아니야?”
남자친구가 연락을 재촉하지 말아 달라고 말하자 하린은 격분했다.
“그럼 헤어져.”
그녀는 남자친구의 사진과 메시지를 모두 삭제했다.
하지만 몇 시간 뒤 심한 공허감을 느끼며 다시 연락했다.
“아까 한 말 진심 아니었어.”
“제발 나 버리지 마.”
충동적 행동과 자해
하린은 감정이 극도로 올라갈 때 충동적으로 술을 마시거나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한꺼번에
구입하기도 했다.
특히 관계 갈등이 있을 때는 자신의 팔을 손톱으로 긁거나 벽을 주먹으로 치는 행동이 나타났다.
하린은 말했다.
“화가 너무 나면 그 감정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어요.
”자해 행동에 대해서는 죽고 싶은 것과는 조금 달라요. 너무 답답한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하는 것 같아요.”라고 설명했다.
정체감의 불안정
하린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확신이 부족했다.
직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날에는 “저는 사실 능력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라고 말했다.
하지만 상사에게 작은 지적을 받은 날에는 “저는 아무것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 같아요.” 라고
말했다.
또 가까운 사람에 따라 취향이나 목표가 크게 달라졌다.
연인이 운동을 좋아하면 운동에 몰두했고, 이전 연인이 미술을 좋아했을 때는 미술 관련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상담자가 “하린 씨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라고 묻자 그녀는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잘 모르겠어요. 누군가와 같이 있을 때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은데, 혼자 있으면 잘 모르겠어요.”
치료자의 이해
치료자는 하린의 어린 시절부터 반복되어 온 경험에 주목했다.
하린은 어린 시절부터 가까운 사람이 갑자기 화를 내거나 떠날 수 있다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경험했다.
또한 감정을 표현했을 때 충분한 위로나 이해를 받기보다는 “예민하다”, “잘하면 된다”는 반응을 경험했다.
그 결과 하린에게는 상대의 작은 거리감→ 버림받을 가능성으로 해석→ 극심한 불안→ 확인과 매달림→ 상대가 부담을 느낌→ 분노와 공격→ 관계 악화→ 자기비난과 공허감이라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었다.

경계선 성격장애에서 나타나는 강한 감정과 관계의 어려움은 단순히 ‘예민한 성격’이나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그 이면에는 버림받을 것에 대한 깊은 두려움과 감정을 조절하기 어려운 고통이 자리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행동만 바라보기보다, 그 행동 뒤에 어떤 감정과 두려움이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